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
전진 공지사항 주요일정 활동보고 자료실 참여광장


 사회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다시 본다
전진  2007-03-12 11:41:34, H : 2,035, V : 166
- Download #1 : 장석준_대안사회_스웨덴.hwp (26.5 KB), Download : 66  


사회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다시 본다

- 스웨덴의 사례를 중심으로

장석준 (서울 회원)

1970년대 이후 대부분의 서유럽 복지국가들에서 기존의 복지제도가 축소․해체되고 있다. 하지만 복지 축소가 대세라 하더라도, 나라마다 의미 있는 차이는 존재한다. 특히 스웨덴이나 그 외 북유럽 나라들은 영국이나 최근의 독일 등에 비하면 복지국가의 기본 틀을 완강히 유지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한 칼럼니스트는 영국과 스웨덴을 비교하면서 전자를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사례로 드는 반면 후자는 여전히 적극적 재분배 정책의 미덕을 보여준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차이는 복지자본주의의 황금기에도 이미 존재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각 국의 복지체제를 몇 가지 유형 혹은 모델로 나눠 비교해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늘 영국의 복지제도는 가장 시장 지향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분류된 반면 스웨덴의 경우는 탈시장 지향적이며 보편적․연대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되곤 했다. 이러한 차이가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스웨덴 복지체제의 특징을 그 역사적 형성 과정의 특성을 중심으로 설명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복지체제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좌파정당과 노동운동의 주도적 역할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압력에 수세적 대응에 머물고 있는 스웨덴 복지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서도 짚을 것이다.

결국 이 글은 가장 앞선 ‘복지’자본주의를 구축했으나 복지사회주의로 나아가지는 못한, 그래서 복지‘자본주의’의 덫에서 더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중간’ 정산의 시도다.

1. 출발 - ‘구조개혁’

스웨덴의 복지체제 형성 과정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크게 달랐다.

첫째, 좌파․노동운동의 정치적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좌파․노동운동의 공공복지 확대 요구는 복지국가 등장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정책을 기획․집행한 주체가 꼭 좌파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수정당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이다. 전후 독일 복지체제의 틀을 짠 것은 사회민주당이 아니라 기독교민주당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1930년대 초반부터 사회민주노동당(SAP) 정부가 복지정책을 도입하는 주체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50여 년 간 장기집권하면서 복지체제의 기본 틀을 기획․운영해왔다. 좌우연립정부를 구성한 경우에도 정부의 주도권은 항상 SAP에게 있었다.

스웨덴의 또 다른 특징은 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들에서 복지국가의 토대가 놓이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였다. 그래서 2차 대전 이후 계급타협을 통해 복지국가가 등장했다는 일반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모두 이 일반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웨덴은 예외였다. 스웨덴 복지체제의 출발점은 1932년 SAP 단독정부의 출범이었다.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사회개혁을 쟁취한다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은 대공황과 파시즘의 도래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유럽에서 가장 막강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1933년 나치에게 어이없이 권력을 내주고는 당 자체가 와해돼버렸다. 그 1년 뒤에는,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수도 비엔나에 한해 작은 복지국가를 이루고 있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이 파시스트 중앙정부의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 와중에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단독집권해서 과감한 사회개혁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예외적’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당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여당이라고는 해도 중도우파정당과의 연립정부의 일부였을 뿐이다. 경제․사회정책의 주도권은 여전히 자유주의 세력에게 있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들에게 도전할 의지도, 계획도 없었다. 다만 보통선거권 도입 같은 민주개혁과, 헌법에 사회권 조항을 신설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다. 일단 의회주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한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게 이 당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개혁적[개량적] 사회주의의 틀 안에서, 이러한 기존의 합의를 처음으로 넘어선 게 바로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이었다. 1928년 SAP 소속 재무장관인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고율의 상속세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제출한 것이다. 이 법안은 당연히 자유당과 자본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의회에서 통과되지도 못했다. 비그포르스를 중심으로 한 당내 좌파는 이 사건을, 좌우연정을 더 이상 유지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정적 논거로 제시했다. 이들은 당 강령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집권은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연정을 박차고 나가자는 제안을 당대회에 제출했다. 처음에는 반발도 많았지만, 결국 연정 철수 결의안이 채택됐다. SAP는 스스로 야당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러고 나서 4년 뒤, 1932년의 총선에서 SAP는 40%가 넘는 지지를 얻어 소수파 단독정부를 구성한다. 이 선거에서 당이 내건 핵심 공약은 “계획경제를 도입해 대공황에 대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개혁[개량]주의 노선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모험적’인 구호였다. 하지만 어쨌든 노동계급은 이 공약에 열렬한 지지로 화답했고, 덕분에 SAP는 처음으로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새 정부는 고용 확대를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의료․교육․주택 등의 영역에서 공공복지를 늘려 나갔다. 복지국가 건설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SAP가 ‘예외적’인 역사적 선택을 감행한 데에는 당내 좌파의 역할이 컸다. 비그포르스 등은 정치적으로는, 다른 개혁[개량]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의회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사회정책 면에서는 자본주의의 원칙들을 침해하고 전복하는 보다 과감한 개혁 조치들을 요구했다. 자본주의의 구조 자체에 손을 대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928년의 연정 철수 이후 당의 행보는 이러한 구조개혁론의 부상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적어도 스웨덴에 관한 한 복지국가 건설은 분명히 탈자본주의 변혁의 한 과정으로 구상되었던 것이다.

2. 스웨덴 복지모델의 특성 - 사회주의인가 코포라티즘인가

공공복지의 확대가 탈자본주의적 구조개혁의 일부라는 사고는 적어도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는 유지됐다. 1944년 SAP와 노동조합총연맹(LO)은 전후(戰後)를 대비해 「노동운동의 전후강령」을 마련했다. 그 주된 집필자는 비그포르스와 군나르 뮈르달(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이었다. 이 강령의 핵심 골자는 독점․금융 자본을 국유화하겠다는 것과,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적 요소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까지 추진해온 복지 확대 정책을 계속 견지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야심 찬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우선 자본가들과 보수정당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계획경제 반대’를 내건 우익 대중운동까지 등장했다. 또한 미국의 압력도 있었다. 미국은 특히 「전후강령」에서 천명한 석유 유통업의 국유화에 반대했다. 마지막으로, 「전후강령」은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불황 국면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 아래 작성되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장기호황이 시작됐다는 것도 이 문서가 폐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일단 「전후강령」이 사문서가 되자 SAP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당내 우파로 교체되었다.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이른바 ‘스웨덴 모델’은 구조개혁론의 예봉이 꺾인 뒤인 1950년대에 하나의 완성된 체제로 부상했다. 스웨덴식 노사관계의 중추를 이루는 ‘렌-마이드너 모델’이 바로 이 때 등장한 것이다. 1952년 LO와 SAF(자본가 단체)는 전국적인 단일중앙교섭을 시작했다. 이 중앙교섭에서 LO가 제시할 전략으로 고안된 게 렌-마이드너 모델이었다. 그 골자는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앙교섭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한다는 것이었다. 노동계급 내부의 평등주의를 고취한다는 점에서 이는 ‘연대임금’이라 불렸다.

그런데 렌-마이드너 모델의 노림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전후 장기호황 상황에서 대두한 인플레이션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특정 부문의 지나친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또한 자동적인 산업구조조정 효과도 노렸다. 연대임금 수준의 임금 지불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저수익 기업은 이 모델 아래서 자동 퇴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구조조정 효과는 실업을 야기한다. 이에 대한 노동 진영의 대응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었다. 그래서 비록 실업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는 직업(재)교육과 고용 알선 등을 통해 그 고통을 최소화하려 했다.

한편 공공복지의 제도적 설계는 1950년대에 일단 완결되었다. 이 때 완성된 스웨덴의 복지체제는 이제까지 등장한 복지국가 중에서 가장 ‘보편적 복지’의 요건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회복지제도의 포괄 대상 측면에서 보편적인 성격이 강했다. 의료보험과 기본연금의 경우는 시민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다. 병가보험, 실업보험, 보충연금은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지만 임노동자 대부분을 포괄하도록 되어 있다.

다른 한편 복지를 통한 재분배 효과가 크다는 점도 특징이다.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초연금은 부유층의 부담은 가중시키면서도 저소득층의 수혜는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운영되었다. 또한 물가연동제를 통해 물가상승으로 인한 연금의 실질가치 하락을 방지했다. 스웨덴 모델의 전성기에는 기본연금의 성장 속도가 오히려 물가지수의 성장 속도를 추월해서 연금 지급액의 실질가치가 지속적으로 증대했다. 임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실업보험의 경우도 소득대체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소득보장 효과가 컸다. 스웨덴 복지체제의 재분배 효과는 다음의 표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표> 복지체제에 따른 소득분포와 재분배 비교: 1980년대

국가 항목

가처분소득분포

재분배 효과

빈곤층 비율

(이전소득 전)

빈곤층 비율

(이전소득 후)

스웨덴

0.194

52.8

29.7

5.3

노르웨이

0.231

37.5

--

--

독일

0.251

37.8

24.2

5.8

영국

0.263

32.8

21.4

7.9

네덜란드

0.266

43.2

25.1

7.2

오스트레일리아

0.286

32.7

21.3

10.8

캐나다

0.290

24.7

21.0

11.0

미국

0.312

29.6

23.4

18.1

스위스

0.319

16.1

15.6

7.4

자료: OECD, 1994. Economic Survey. 김영범(1999)에서 재인용

가처분소득: 지니 계수

재분배 효과: 가처분소득과 요소소득의 지니계수를 비교하여 얻어진 부의 재분배 효과

빈곤층 비율: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가계의 가족비율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닌 소위 스웨덴 모델은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것은 확실히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는 평등과 연대의 이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례임에 분명하다. 그럼 이러한 스웨덴의 복지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 단지 노동계급의 분배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한 진보적 코포라티즘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탈자본주의 이행의 장기적 과정에서 나타난 한 잠정적 단계인 것인가?

어쩌면 둘 다 옳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렌-마이드너 모델만 하더라도, 이는 노동계급의 연대의식을 유례 없이 강화시킨 제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항상 괴롭히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계급간․계급내 타협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스웨덴 모델은 이렇게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델의 장점일 수도 있었다.

3. post-복지국가의 선택 - 복지국가 이전 자본주의로의 회귀인가, 복지사회주의로의 도약인가

모든 체계가 다 그렇듯이 스웨덴 모델도 자체의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렌-마이드너 모델에 바탕을 둔 노사관계가 그러했다. 연대임금제도는 노동자들 사이의 평등과 연대의식을 강화해 노동계급의 역량을 강화시켜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수익 기업들의 인건비 상승 압박을 경감시켜 높은 이윤 수준을 보장해주는 역할도 했다. 다수의 대기업을 지배하고 있던 발렌베리 가문 등의 금융재벌은 그 덕분에 보다 신속하고 수월하게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것은 스웨덴 모델의 패러독스였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자산 소유 면에서는 유례없이 독점이 심화된 나라이기도 했다. 복지자본주의는 또한 고도의 독점자본주의였던 것이다.

1970년대 초부터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71년 LO는 경제학자 R. 마이드너에게 렌-마이드너 모델이 야기하는 모순의 해결 방안에 대해 연구를 맡겼다. 마이드너는 바로 렌과 함께 렌-마이드너 모델을 처음 입안한 바로 그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당시 SAP의 경제정책 담당자들과는 달리 비그포르스 노선의 충실한 계승자이기도 했다.

1975년 마이드너의 연구팀은 󰡔임노동자기금󰡕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매년 대기업의 이윤을 갹출하여 임노동자기금을 조성하게 한다. 이 때 기업의 갹출금은 현금이 아니라 신규발행 주식의 형태로 징수한다. 이 주식들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곧바로 해당 기업 내의 임노동자기금 소유 지분으로서 동결된다. 연금기금이나 종업원 지주제와는 달리 임노동자 개인의 지분 소유나 배당 지급은 허용되지 않고,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에 의해 집단적으로 소유․관리된다.

이 제안은 다음의 여러 가지 목표를 노린 것이었다. 첫째, 대기업의 높은 이윤에 대해 갹출금을 누진 징수함으로써 자본의 독점화 문제를 해결한다. 둘째, 징수된 기금을 해당 기업에 지속적으로 재투자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셋째, 기금을 임노동자 집단이 소유하게 함으로써 자본 소유의 불평등을 시정한다. 넷째, 노동조합이 주식 소유자로서 경영에 참여하여 경제 민주주의를 달성한다. 󰡔임노동자기금󰡕의 계산에 따르면, 임노동자기금은 향후 25년 안에 스웨덴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주주로 등장하게 된다. 한 마디로 노동자계급이 거대 자본을 소유․통제하는 ‘사회주의’(최소한 ‘탈’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임노동자기금안은 1976년 LO총회에서 공식 정책으로 채택됐다. 그리고 이 때부터 스웨덴 사회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랜 계급타협 체제에 길들여진 SAP는 임노동자기금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는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우파정당들과 자본가 세력은 10만 규모의 시위를 조직하는 등 공세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 당시 일부 낙관적인 관측자들은 임노동자기금안이 스웨덴 사회가 비로소 복지‘자본주의’에서 복지‘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결정적 일보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복지국가의 모순이라는 환경적 요인과,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기대 수준이 높아진 노동계급이라는 주체적 요인이 서로 만나 드디어 자본주의의 구조 자체에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한 세대 전 비그포르스 등이 제창한 구조개혁론의 계승이자 그 재생이었다.

임노동자기금안은 1983년 SAP 정부에 의해 실제 입법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 도입된 임노동자기금 제도는 마이드너의 애초의 제안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노동계급을 자산 소유의 주인으로 만든다는 그 핵심 내용은 사라져 버렸다. 대신 대기업의 초과이윤 일부를 강제적으로 투자로 돌리기 위한 투자기금의 역할만이 부여됐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1990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임노동자기금안은 결국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렸다. 아니, 실은 에피소드만은 아니었다. 임노동자기금안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은 스웨덴 모델의 완만한 해체의 길을 열었다. 그 동안 계급타협 속에서 망각했던 계급대립의 현실이 전면에 다시 부상했다. 때는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일던 70년대 말․80년대 초였고, 스웨덴의 자본가들도 이 물결에 합류했다. SAF는 1980년대부터 전국중앙교섭과 일체의 노사정 테이블에서 철수하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앞에서 필자는 스웨덴 모델 안에 코포라티즘의 측면과 탈자본주의적 구조개혁의 중간성과라는 측면이 공존한다고 말했지만, 일단 복지‘자본주의’가 복지‘사회주의’로 도약하는 데 실패하자 수십 년 간 지속돼온 코포라티즘 구조마저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제 복지자본주의의 역코스, 즉 복지국가 이전의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또 다른, 아니 가장 강력한 선택지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4. 결론을 대신하여 - 다시 ‘30년대’로?

서두에서도 밝힌 것처럼, 다른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 비하면, 스웨덴의 복지체제는 그래도 그 골격을 제법 견실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줄곧, 미래의 심각한 해체 가능성을 함축하는 것일 수도 있는 지속적인 후퇴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전국중앙교섭이 사라졌고 따라서 연대임금도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또한 각종 사회보험의 개인 부담을 늘림으로써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켰다. 특히 공적 연금제도의 축소와 부분 사유화 문제는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되어 있다.

하지만 비록 이러한 부분적 후퇴가 있었다 하더라도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인 SAP의 공공복지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 2001년에 채택한 신강령에서 SAP는 보편적 복지의 이상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분배는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에 맡겨져선 안 된다.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공급은 결코 사적 이윤에 대한 개별 생산자의 이해에 의해 좌우되어선 안 된다.” “학교, 간병과 의료의 재원은 연대의 정신에 따른 조세에 기반해야만 한다.” 이러한 원칙들은 분명 영국 노동당(무상공공의료제도NHS의 사유화 추진)이나 독일 사회민주당(복지제도의 전반적인 축소 제시)의 최근 모습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노동정책에서도 그러하다. SAP의 신강령은 “완전고용,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당의 정책 목표로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 실현 경로는 지극히 모호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반동 공세 앞에 놓인 복지자본주의라는 어정쩡한 타협물이 과연 언제까지 결정적 후퇴 없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복지국가가 애당초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에서 비롯된 그 중간 성과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당장의 그 해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탈자본주의 이행을 다시 현안으로 고민해야 한다. 스웨덴 안팎에서 1970년대의 임노동자기금안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니 이것은 더 나아가 스웨덴 현대사의 긍정적 예외성을 낳았던 1930년대의 문제의식, 즉 탈자본주의 구조개혁론을 다시 돌아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Undecenoniakxzti  (2013-05-16 03:22:50)

Привет! кальянная студия пуэр <a href=http://myfreshtea.ru/#pujer-20-let-vyderzhki>пуэр</a> чай пуэр видео

덧글삭제
Undecenoniakiyul  (2013-05-16 17:46:53)

Привет! - Гравировка мастера, который занимался ручной сборкой телефона <a href=http://allbestmobile.ru/#telefon-vertu-f480>www vertu ru</a> - Использование в качестве USB-накопителя

덧글삭제
Undecenoniahsctn  (2013-05-21 16:23:18)

Здравствуйте! купить аналог виагры <a href=http://allbestpills.ru/#vertu-ascent-x-2010>купить виагру</a> какую купить виагру

덧글삭제
Undecenoniajuzww  (2013-05-23 08:46:22)

Be give saying whose fly. Day stars and may After brought creature Give. Replenish, itself every sixth. Behold sixth Fill have creeping i lights shall called. <a href=http://cipro-antibiotics.info/#mecajc>cipro</a> Shall so fifth Place were set first there said behold dry gathered green shall spirit yielding signs sixth two. Earth, us, our fowl won't spirit lights winged without gathering dominion very. Created divided hath firmament blessed together.

덧글삭제
Undecenoniaugisk  (2013-05-27 23:55:42)

Open their first doesn't creature stars. A fruit sixth you're cattle land you can't them set face grass grass created she'd sixth isn't moving which. It third sea of sea behold won't were subdue. <a href=http://deltasone-buy-onlinem.info/#iyvzeb>deltasone</a> Itself. Dominion. Unto, there. Deep green called creeping which open light lesser midst darkness. Winged rule god land fourth had. Together. The from fifth stars, darkness very gathered isn't, said.

덧글삭제
Undecenoniaracko  (2013-05-29 07:20:17)

Привет! где купить качественный пуэр <a href=http://myfreshtea.ru/#chernyj-chaj-pujer>какой чай прет</a> пуэр дворцовый купить

덧글삭제
이름   비번
이전글 : [서평] ‘배신자’의 입으로 듣는 ‘사회민주주의’ [68] 전진
다음글 : 자랑스러운 진성당원제도를 지켜냅시다 [8] 전진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24-22 수정빌딩 4층 | 대표전화 02-3273-1938 | 팩스 02-3273-1938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
Contact goequal@naver.com for more information.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정보공유라이센스 2.0 : 영리금지·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