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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대선과 8월의 전망
배준범  2006-08-02 15:43:41, H : 1,654, V :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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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정세에 숨 가쁜 지난 보름이었다.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문제가 레바논, 시리아, 이란까지 포괄하는 지역 갈등으로까지 번졌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6일째 지속되고 있다. 북한도 미사일을 발사한 후, 안보리 구성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한 대북 결의안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한반도에서도 불안정성이 좀처럼 해소되질 않고 있다. 중동에서는 5차 중동전쟁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대북 안보리 결의안을 전면 부정하고 추가 미사일 발사까지도 배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양 지역에서의 긴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세계 좌파들이 더욱 촉각을 세우고 관심을 가졌을 사안은 이미 6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이었다. 바로 1억 2천만 인구에 미국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중남미의 2번째 대국, 멕시코의 대선이었다. 이번 선거는 작년 말부터 집권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와 멕시코 시장이었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 민주혁명당(PRD) 후보 사이의 대결로 압축된 상태였다. 현 빈센테 폭스 대통령(국민행동당 소속) 이전에 80년 넘게 멕시코를 지배했던 제도혁명당 후보는 결국 대선에서 20%대를 득표하면서 3위를 기록했지만 초기부터 구도를 3자 경합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폭스의 자유무역 및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던 칼데론 후보와 사회복지 지출의 대대적 확대와 빈민을 위한 정책을 주창한 오브라도르의 선명한 경쟁 속에서 두 후보 간 격차가 5% 내에서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어 더욱 많은 관심을 모았던 선거였다.


  7월 2일에 투표는 마감되고 개표가 시작됐으나 3일 저녁이면 발표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결과가 처음에는 1% 내외의 차로 칼데론이 승리한 것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는 4일 오전 오브라도르 측의 부정선거 가능성 제기에 따라 5일과 6일에 개표 용지를 다시 검토하여 이상이 포착된 개표 용지들의 해당 투표함을 재개봉하고 이 투표함들에 대해서는 재개표를 했다. 결국 6일에 이르러서야 0.58%차이로 칼데론의 우세가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했다. 스페인, 영국 등 일부 정상들은 칼데론에게 축하 전화를 걸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이때부터 멕시코 대선의 정치적 힘겨루기가 본격화되었다. 일부 부정선거 근거가 드러나면서 오브라도르 측에서 모든 투표함을 개봉하여 수(手)검표 하라는 요구를 내건 것이다. 멕시코 법에 따르면 투표함 훼손․분실, 개표결과가 조작의 증거가 포착되면 재개표를 연방선거심판소가 명할 수 있다. 오브라도르 후보 측은 이미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물과 서류를 심판소에 제출한 상태이다.

  유럽연합의 선거 감시단은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으나, 투표와 선거 과정 동안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대표단도 “수검표”라는 단어 자체는 쓰지 않았지만 입장문에서 투표 및 개표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불일치와 불규칙성”을 지적하며 “명확하고 명백한 승자를 멕시코 투표자들이 볼 권리가 있다”고 촉구해 사실상 수검표 입장을 공표했다.

  오브라도르 측은 행동으로도 나섰다. 9일에는 투표함 하나하나, 투표 하나 하나를 검표하라는 요구를 걸고 집회를 조직했고 여기에는 수십만이 참석했다. 멕시코 전역에서 수검표를 요구하는 행진이 멕시코 시티로 향할 것이며, 그 다음 주에 이들이 모여 다시 집회를 열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16일에는 9일 규모의 2배에 이르는 (일부 언론에서는 100만 명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이 운집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칼데론 측도 정치적으로 대응했다. ‘선거는 거리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며 선관위의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넣었고, 잠정적 인수위 인사들을 접촉하고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16일 오브라도르는 지지자들 앞에서 다시금 전체 투표에 대한 수검표를 요구했고 앞으로는 시민 저항을 멕시코 전역에서 적극 조직한다는 방침을 이미 지지자 조직들에게 내려 보냈다. 투표소 점거, 지속적 시위 집회 등의 방법들을 통해서이다.


  이 전 과정에는 오브라도르의 노련한 전술적 운용이 있다. 4일 부정선거 증거 제시, 6일 연방선거 심판소에 수검표 요구 등록, 9일과 16일의 집회와 불복종 운동의 지속 선언은 연방선거 조직에는 최대한 압박을 가한다는 일관된 정치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최대한 가해 수검표를 수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 동원 정치와 함께 그의 발언들을 통해서 앞으로 진행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멕시코의 역대 선거 과정과 정치경제 영역의 부정부패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 효과는 수작업을 통한 모든 투표들에 대한 전면 수검표가 없다면 자신은 또다시 부패한 엘리트들의 부정한 행태의 피해자로 대중들 앞에 인식되게끔 하는 것이다. 민주혁명당 운동의 정당성과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선거 과정에서의 부정을 각인시킨다면 재검표가 거부된다 하더라도 바로 결정에 대한 불복종 운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 설사 칼데론 체제가 출범한다고 해도 엄청난 규모로 조직될 반대 운동으로 인해서 이는 반쪽짜리 정부가 될 수밖에 없고 지속성이 의심받아 통치를 안정적으로 하는 것을 어렵게 하게 될 것이다. 연방선거심판소도 이를 염두에 두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연방 선관위에서 전면 재검표와 수작업을 결정한다고 해서 이러한 포지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오브라도르가 재검표 결과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이후 멕시코 진보 진영의 중심으로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16일 집회에서 재검표 결과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을 한 것이다. 물론 불복종 장외 시위는 거둬들일 것이라고 이미 선언했다. 다만 선거 운동 과정에서 폭스 대통령이 나선 것이라든가(현직 대통령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상대 진영의 근거 없는 흑색선전에 대한 언급과 부정 선거 행위 포착으로 인해서 선거 과정 자체가 이미 인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브라도르의 메시지가 지지자들에게 전달되어 선거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와도 민주혁명당과 오브라도르는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 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수검표를 위한 압박을 전방위적으로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이후 운동을 위한 태세를 오브라도르 진영은 갖추고 있다. 수검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결과적으로 질 경우를 염두에 두면서 선거 과정 전체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오브라도르의 당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당분간 멕시코에서의 불안정성 정국은 최소한 연방선거심판소가 재검표 여부에 대해서 판단을 하는 8월 31일까지 지속될 것이고 그 이후로 연장될 수도 있다. 오브라도르 지지자들은 집회와 불복종 운동에 열성적으로 임하고 있다. 17일자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16일 집회가 그 전 주의 집회와는 달리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분노의 정서가 느껴진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오브라도르 지지자들과 칼데론 지지자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충돌들이 나타나고 있다. 88년 민주혁명당의 대선 승리를 강탈당한 기억이 선명하기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사실 이 글을 기획한 배경에는 중남미에서 최근 몇 년간 이어져온 ‘좌파 바람’이 멕시코로도 확산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실제로 선거 운동 막바지에는 멕시코 내 주요 여론조사에서 경합 속 우세가 점쳐졌기에 그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에 이어 중미 최대국이자 미국과 맞닿아 있는 멕시코에서도 민주혁명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나프타 재협상 목소리가 멕시코 내에서 커지고 남미 지역 연대와 창의적 사회 프로그램 실험들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민주혁명당은 사민주의 정당들의 모임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소속 정당이긴 하지만, 멕시코 정치에서는 그 왼쪽으로의 대안 부재 때문에 민주혁명당 내부에는 급진 좌파와 온건 사민주의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남미 좌파들 중에서 민주혁명당이 상대적으로 오른쪽에 서있고, 오브라도르가 실제로 좌파적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브라도르가 집권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거나 칼데론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은 지역적 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진단이다.

  가령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이 결성한 남미관세동맹인 메르꼬수르와의 관계 강화나 아르헨티나 브라질과의 정치적 협력 증진은 전면적으로 NAFTA를 거부하는 단절과는 다를 수 있어도, 멕시코 내부 정치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함의가 상당하다. 이미 싹트고 있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지역 질서와는 다른 정치경제 질서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 당장 미주 지역 34개국의 외교안보협의체인 미주기구(OAS)에서 미국의 외교적 고립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고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나 쿠바와의 건설적 협력 역시 현 수준보다는 그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멕시코 남부 치아빠스 주에서 무장 봉기 중인 싸빠티스타와의 협상도 상당한 진척이 있을 가능성도 높아질 텐데, 이들의 행보가 자유로워지는 것 또한 세계 운동에 대한 기여일 것이다.


  즉, 멕시코에서 좌파의 승리는 지역 차원에서 대안적 협력 방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그만큼 늘리는 것이다. 국내정치 차원에서의 정책적 변화뿐만이 아니라, 대외정책 차원에서도 지역 내 국가들 간, 그리고 남미 지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게 되고, 상징적인 좌파연대의 과시를 넘어 실질적인 협력의 초기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는 남미에서 그것을 구체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한 차원 더 높이는 것이다.

  물론 멕시코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표에 대한 수검표가 이루어질지도 미지수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오브라도르가 승리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설사 그가 승리한다고 해서 온갖 대내외적인 제약 속에서 멕시코와 남미에서의 변혁의 가능성이 한순간에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의 좌파 정권들의 기반이 탄탄한 상황에서 오브라도르의 패배가 남미 좌파들의 성장 추세를 결정적으로 꺾을 일도 아니다. 다만 “신으로부터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까운” 멕시코의 민중들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배준범  서울회원


이름   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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