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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운동의 새로운 방향
유양종  2006-08-02 15:49:32, H : 1,765, V : 181


  전진 기관지 위원장으로부터 농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에 대하여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기한이 넘었다. 그 사이 노트북이 고장 나고 수해를 만나며 며칠 컴퓨터를 켤 시간이 없었다. 어쨌거나 내 게으름의 소치이다. 

  내가 농민운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정권이 네 번 바뀌었고 약관의 청년이 불혹을 넘겼다. 돌이켜 보면 그 동안 세상은 바뀌었는데 농민운동은 여전한 것 같다. 변하기는 변했다. 카톨릭 농민회, 기독교 농민회 등이 전국농민운동연합을 거쳐 전국농민회총연맹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농민운동은 근본적으로는 변한 것 같지 않다. 그 불변함을 한결같다고 칭찬해야 할 일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첫 번째 드는 의문은 운동이 싸움인가? 하는 것이다. 하긴 농민운동하면서 모든 일이 투쟁으로 시작되고 끝이 났다. 고추 수매 요구 투쟁이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투쟁을 거쳐 쌀 개방 반대 투쟁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내가 직접적인 이해를 가지고 싸운 싸움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이긴 싸움은 고추수매요구싸움 뿐이다. 반대를 해서 이긴 싸움은 이기지 못했거나 아직도 싸우고 있는 중이다. 농민운동은 싸움 말고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요즈음은 무엇이든 투쟁으로 끝을 내고 있다.
  또 하나 의문은 그런 숱한 싸움을 하여 이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도 지는 것이 죽는 것 다음으로 싫고 내가 끼어든 싸움마다 이기고 싶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이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고 이기는 데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한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승리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싸움은 다른 실패를 가져올 뿐 피로만 누적한다. 물론 지는 줄을 알면서도 싸울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도 예고된 패배를 통해서 획득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 비로소 싸울 수 있지 그나마 없으면 얼마나 비참한 투쟁인가? 그리고 패배를 통해 얻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또한 비장한 싸움은 될지언정 반드시 싸워야 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는 모르겠거니와 지고서 얻는 것보다는 이겨서 뺏는 것이 훨씬 나은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농민운동은 그 숱한 싸움을 이기지 못하거나 지고 있을까? 이것이 농민운동을 하며 드는 의문 중 하나이다. 즉 농민운동을 하며 숱하게 싸웠고 거의 졌으며 이대로 농민운동을 하면 또 질 것 같다. 이것이 나의 농민운동에 대한, 한 문장으로 된 평가이다. 그러면 거꾸로 농민운동을 하며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기만 하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하면 어떨까? 그런 농민운동이 가능할까? 농민운동이 농민의 정치․경제․사회적 제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하여 조직적․과학적인 활동이라고 할 때, 전혀 싸우지 않고 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농민을 둘러싼 이해의 충돌이 피할 수 없으며 타협이나 양보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농민운동의 현실적인 압박 수단으로 대중의 수에 의지한 물리적 충돌이 선택될 때 남은 것은 싸움뿐이다.

  문제는 이해의 관철 수단으로 대중투쟁, 즉 10만, 30만, 100만명이 모이는 대중 집회와 치고 박는 덤불싸움만이 유효한가? 농민운동은 대중집회와 대중집회에 뒤이어 나타나는 물리적 충돌-의도적이건 경찰의 유도에 의해서건-을 회피하여 농민운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농민운동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싸움밖에 없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농민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대중투쟁 이 외의 전술 구사에 알레르기를 보인다는 것이다.
  농민운동의 방법이 대개 싸움이고 그 결과가 지는 것으로 나타나며 다른 방법을 찾을 때 기존의 농민운동이 제약을 가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농민운동을 바라는 활동가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기존의 농민운동의 관성이나 관행에서 획기적으로 이탈하여 처음부터 다시 운동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고민하며 내실을 다져 가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러하고자 하였을 때 농민운동의 방향을 검토할 기준은 농민운동 내부의 성과로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강령이 유일한 자료이다.

  이 강령은 다음 몇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강령의 전문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누가 어떤 시각에서 농업, 농민문제를 인식하고 어떤 경로를 밟아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농의 강령은 각자 나름대로의 인식 틀에서 각자가 경로를 설정할 수 있는 가능성과 무한한 논쟁거리를 그 자체가 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강령이 단순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단정적으로 목표를 설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강령이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목표를 단정함으로써 농민운동의 다양한 모색과 사회적 실험을 봉쇄하는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전농이 강령을 제정할 때의 시대적인 한계인 정치 분야 즉,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누락이다. 대중운동단체가 정당운동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을 때 작성된 강령으로 강령 그 자체가 단일전선체의 유력한 근거가 되며 농민운동이 진보정당에 기여할 바도 진보정당이 농민운동에 개입할 근거도 없는 문건으로 농민운동 내부에 진보정당에 대해 다양한 이견과 무수한 동요를 제어하지 못하는 아직은 삼김시대의 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전농의 강령은 당면한 농업문제에 대해서는  농민운동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거의 모두 망라하였다. 문제는 그 강령을 사회주의적인 원칙으로 이룩할 것인가, 아니면 동일한 강령을 자본가의 입장에서 관철할 것인가이다. 이점에 대해서 강령은 아무 언급이 없다. 계급적 입장이 없는 두루뭉술하게 한나라당의 선거공약에 인용될 수도 있는 강령으로 이것이 전농 강령의 한계이고 나아가 전농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 한계를 민주노동당의 강령으로 극복해야 한다. 특히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민중의 새 세상에서 구현할 농업의 상을 새로이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농민운동을 새로이 하는 출발일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농민운동 세력을 형성하는 일이다. 아직 이 세력은 전국적인 규모에서 형성되지 않았으며 지역적으로도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본다. 기존의 농민운동의 노선과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이며, 그나마 개인적인 문제제기에 그치는 상태이다. 또한 기존의 농민운동에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의 현실과 운동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상당하다. 이 인식의 차이가 하나의 조직으로 결집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클 수도 있으며 농민운동의 특성에 따라 계급에 대한 자각과 자기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농민운동 세력의 전국적 결집에 앞서 그 결집을 준비할 단위의 건설이 우선일 것이다. 이를 전진의 농민당원이 만들어야 한다.     

  전진은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정파활동을 하며 노동운동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다. 농민운동에서도 이러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전진이 민주노총에 가지는 영향력을 민주노동당과 결합한 유일한 농민운동단체인 전농에서 전진의 농민당원이 가질 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진의 농민당원이 시군농민회의 핵심 간부가 되고 전진회원임을 커밍아웃할 때 현실적으로 전진의 영향력이 전농에 투사될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는 전진회원의 활동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전농의 의사결정관행이 이견을 수용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진의 주장이나 견해가 전농의 대의원 대회 등에서 관철되지 않을뿐더러 의도적으로 배제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새로운 농민운동을 위해서는 조직 형식상 전농 이전의 활동가 단위의 결집체인 농민운동연합 수준의 전국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실제적 준비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즉, 새로운 농민운동 세력의 조직 형태가 반드시 대중단체로서 농민회일 필요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은 농민회나 농민운동 활동가 그룹이나 활동가 개인까지 모두 포괄하는 조직형식을 택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한다. 

  남은 문제는 생산 활동과 생활과 운동이 분리되지 않고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농민운동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한 운동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이를 제대로 조합하지 않은 농민운동은 생산과 생활, 운동이 분리되고 일방이 배제되어 대중에게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생산이다. 농민운동은 뛰어난 생산자인 동시에 탁월한 활동가를 요구한다. 이를 개인적인 노력으로 달성하는 것은 활동가를 쉬이 지치게 하고 생활을 사장시키게 한다. 각 단위가 이를 가능하게 할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뛰어난 활동가 활동의 결과로 생산에서 실패하거나 포기하고 생활의 압박에 활동을 접는 경우가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를 방지할 체계적인 시스템이 운동에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는 운동의 단위가 하나 이상의 사업단위를 가져야 하며 그 사업단위가 운동을 지원하고 활동가의 생활을 보장하며 나아가 새로운 세상의 초석으로 작동할 수 있게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민운동을 지속할 활동가 층을 두텁게 하고 안정적으로 충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농민의 노령화를 따라 농민운동 활동가도 노령화되고 있다. 노령화된 활동가를 가지고 농민운동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나 심도 있는 정책의 생산이 폭넓게 되기 어렵다. 육체적으로 혈기왕성하며 두뇌활동도 활발한 청년층의 유입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을 경우 농민운동은 늙은 농민의 운동이 될 것이고 자연히 보수적으로 흐르거나 변화가 없는 고착화되고 화석화 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전진의 농민당원들이 8월중으로 농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한 첫모임을 적당한 장소에서 가질 것을 제안한다.   

유양종  강원회원


이름   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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