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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조직 주비위 제안서(2004. 11. 6)
 - 전진 
 

전국조직 주비위 제안서



다시,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나서자


1.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1) 위기의 현대 자본주의


  현대의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단일한 체제로 만들면서 승리의 노랫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전 세계적 자유시장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은 그것이 국가이든, 계급이든, 아니면 집단이든 간에 철저한 응징만이 있을 뿐이다.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제국의 소위 자유세계 진영을 수호하기 위한 일체의 원조나 지원은 사라졌다. 가진 것 없는 자는 벌거벗은 채 경기장에 올려져 무한 경쟁의 제물이 되고 있다. 한 때 사민주의든 제3의 길이든 다른 길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던 어떤 시도도 승리한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무릎을 꿇고 자유시장을 위한 맹세의 각서를 쓰고 있다.

  그러나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충성 서약서를 쓰고 있는 순간 위기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1세기는 전쟁과 테러의 공포로 역사의 장을 열었다. 발달한 자본주의는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지구 생태의 위기는 인류를 절멸의 상태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의 체제가 성장의 동력을 상실했다는데 있다. 70년대부터 본격화된 불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생겨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금융자유화와 주식시장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투기자본화 한 금융자본에 의한 일시적 상승의 국면이 이어지면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각종 국영기업과 공공영역들이 사유화되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의 유연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남미, 동아시아, 소련을 휩쓸고 간 경제 위기는 이제 미국에서도 위기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윤율의 저하를 금융화된 초국적 자본이 잠시 방어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한계에 직면하였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그들조차 끝간데 없는 세계적 경쟁의 파국적 결과를 두려워하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중국을 주목하고 있고 미국은 헤게모니의 상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 신자유주의에 철저히 종속된 한국


  사회주의체제와의 진영 간 경쟁의 최전방에 위치한 한국은 미국경제에 종속되어 개발독재체제를 통해 급속하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 이후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쇼윈도우로 활용되었던 국가주도의 성장은 부정되고 금융세계화 과정에 통합되게 된다. 신흥공업국은 신흥시장으로 불리게 되고, 한국에서도 IMF 외환위기는 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제 한국은 국가주도형 성장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초국적 자본의 상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모든 규제들이 철폐되어 금융기관들이 초국적 투기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국내 상장 주식의 40%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철도, 발전 등 공기업도 투기 자본의 상품으로 진열되는 등 돈되는 것은 죄다 팔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 역시 국민소득 2만불 시대, 동북아 중심국가론이라는 성장 이데올로기와 각종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 하위 파트너로서 길을 충실히 걷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들의 권리는 일거에 자본의 수중으로 회수되어 버렸다. 비정규직이 60%에 이르고, 항시적인 고용불안으로 위협받고 있다. 손배․가압류 등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제약받고 있고, 노동운동은 노동귀족의 기득권 방어싸움으로 여론 선동당하고 있다. 이역만리 멕시코 땅에서 죽음으로 한국 농촌의 현실을 고발해야 하고, 고통스러운 민중들의 삶은 자식들마저 죽여 버리는 생계형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미래에 대해 누구도 안정된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3) 세계적 저항 전선의 형성


  그러나 광폭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저항의 세계화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키는 국제기구의 회의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애틀, 프라하, 제노바 등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시위는 빈곤의 세계화에 대한 전 세계 민중들의 자각적 투쟁이다. 세계사회포럼, 국제반전운동 등을 통해 운동세력들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세력들의 이념과 입장은 다양하다. 오히려 이 운동에 하나의 선언적 이념을 제시하려는 것은 불가능하고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운동에서도 노동자계급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 노동운동은 중심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존의 관성을 탈피하지 못한 관료화된 조직노동운동은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의 노동자 민중들이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걸고 있는 기대는 노동자들이 변혁의 주체로, 세계적 연대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4) 북미위기와 한반도 정세


  94년 한반도 전쟁 위기 상황에서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합의 사항의 이행을 둘러싼 북미간의 대립은 또다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클린턴의 북한방문이 성사되지 못한 채 등장한 부시정권은 그간의 합의의 정신을 무위로 돌리고 악의 축 발언, 북한인권법 등 대북 압박을 강화시켜 오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핵카드를 다시 내걸고 대미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간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 개방을 통해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이 요구한 6자 회담의 성사를 통해 체제안정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평화가 동아시아의 궁극적 전략 목표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수출로 인한 테러위험의 증가를 불안요인으로 제기하지만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보다 근본적으로 대중국정책과 맞물려 이루어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한미일 동맹체제의 강화와 MD(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은 잠재적 적국으로서의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한반도의 평화상태는 이 체제의 구축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고, 또한 한반도 통일은 중국과 직접 맞서야 하는 상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위기를 적절히 활용한 현 상태의 유지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의 민중들에게 참기 힘든 고난을 강요하고 있고, 남한 역시 엄청난 예산이 무기수입과 방위비 분담으로 낭비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동북아중심국가를 내세우고 있으나, 여전히 미․일의 경제적, 군사적 동맹체제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전체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2. 우리의 주체적 현실은 어떠한가?


  이러한 상황인데도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저항은 폭발적이지 않고, 활동가들은 전망의 부재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단결투쟁의 머리띠와 노동가는 이제 형식적 치장이나 관람의 대상이 되고 누구하나 가슴 절절히 노동해방을 외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이토록 민중의 삶을 처절하게 망쳐놓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허둥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어떻게 운동의 책임주체를 세워낼 것인가.


  1) 부문운동으로 전락한 노동운동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폭압과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이 주전선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인 동시에 의제와 상관없이 “투쟁 그 자체가 계급투쟁”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었다. 기업별 노조라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지만 민주노조의 전투적인 투쟁은 그 자체가 정치투쟁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민중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예전엔 일정하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조건도 이제는 부정적 조건으로 변화되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보장되고 민주노총이 합법성을 가진 조건에서는 투쟁 자체가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정치적 투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편입한 자본의 공세가 전면화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절이 가속화되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수탈이 심해지고 있다.

  주체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의 동력이었던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이 자본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정규직 중심의 운동으로 비판받고 있다. 전노협, 민주노총으로 이어져왔던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전체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위협받고 있다. 지금까지 변혁운동의 중심이었으며 주도세력으로 전체를 대표해 왔던 노동운동은 이제 하나의 부문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다.


  2) 불안한 성장 속에 있는 당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당의 등장은 좀 더 빨랐어야 했다. 노동자의 정치적 부대가 없음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시련은 과거의 문제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운동가들이 자유주의자로 투항해 간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뿌리깊은 개량주의와 자유주의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노총의 참여와 지원 속에 민주노동당은 4.15 총선을 계기로 의회 내에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80년대는 학생운동의 시대, 90년대는 노동운동의 시대, 2000년대는 정당운동의 시대라는 말이 있듯이 민주노동당은 변혁운동의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당이 대중 정치운동을 제대로 벌여낸다면 노동자 민중운동의 교착상태를 뚫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운동의 침체가 또한 당을 규정하고 있다. 당은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자 대중의 참여가 미흡하고, 제도정치, 현장정치, 지역정치를 서로 결합하는 대중정치의 전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또 한편 당은 사회 변혁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과연 그럴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방치된다면 비록 당 자체는 선거 정당, 의회 정당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노동자 민중의 계급정당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3) 변혁적 사회운동 성장의 정체


  노동운동의 정체와 퇴보는 다른 사회운동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마땅히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근본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을 지지하는 중산층 운동을 넘어서는데 어려움에 겪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적 비판은 몇몇 지식인의 동아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 사회의 가장 억압받는 이들인 일하는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학생운동의 쇠퇴는 진보세력의 재생산 위기까지 점치게 하는 형편이다.

  노동운동과 함께 대중운동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농민운동은 협동조합개혁투쟁,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쌀 시장개방 반대투쟁 등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쟁점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정권과 자본의 농업 구조조정은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다. 정권은 한국의 농촌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신자유주의 자본운동의 논리를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농민운동은 한국사회의 대안적 비전과 결합되지 못한 채 농민들의 최소한의 경제적 이해를 지키는 투쟁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3. 무엇이 우리 운동의 문제인가?


  1)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는 민중운동


  남한의 민중운동은 7~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성장한 노동운동의 계급적 투쟁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변화된 시대적 조건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지 못하고 한계에 부닥쳐 있다. 우리의 주체적 현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운동의 영역이 다양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혁을 위한 전체 운동으로 총화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 대중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삶의 고통에 허덕이면서도 여전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가망 없는 생존 경쟁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이 속에서 노동운동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농민운동을 세계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세력으로 취급하는 정권과 자본의 전략이 먹혀드는 실정이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젊은 세대 내에서의 다양한 가치의 등장이 민중운동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운동을 주변화 시키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젊은 세대들이 상대적 진보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개인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운동세력화 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 당하고 있다.

   

  2) 전망과 이념의 부재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 생겨난 이념적 혼란 속에서 많은 변혁운동가들이 운동을 떠났다. 그러나 운동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의 경우에도 변화된 조건 속에서 변혁의 전망을 세우지 못한 채 자생성의 굴레에 갇혀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했다. 80년대에 살아났던 변혁투쟁의 큰 흐름이 90년대에 들어와 부문운동의 영역으로 해체되었다. 

  노동운동에서는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전화시켜내는 목적의식적 노력이 사라지고, 전투성이 최선의 가치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장이 전부라고 외쳐지지만, 그 중에서도 규모가 큰 사업장의 투쟁을 어떻게든 끌어내려고 하는 노력만이 최우선이 되고 전투적 실리주의를 만연시켰다. 그러한 과정은 결국 대공장과 정규직의 조직된 노동자 중심의 운동으로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른 한편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국민대중에게 인정받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교섭에 우선적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경향이 운동의 큰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이들은 자비로운 국가에 기대를 걸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자유주의세력 및 자본과의 생산성 동맹을 맺기 위한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투적 조합주의든 아니면 교섭주의든 형태는 달리하지만 결국 경제적 실리주의로 귀착되고 있다. 새로운 이념과 전망을 제대로 세워내지 못한 것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반면에 자본은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확대시켜 노동운동을 고립화시키고, 양보교섭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노동운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농민운동을 포함해서 모든 운동이 전체운동의 전략을 제대로 세워내고 구심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당장 눈앞의 투쟁에 힘을 소진해 가고 있다.


  3) 왜곡된 정파운동


  전략적 전망을 갖추지 못하면서 운동 속의 다양한 정파들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고, 선거를 두고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있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제로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권력의 장악에만 몰두하고 있다. 왜 함께 해야 하고, 왜 갈라서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기준도 없이 서로를 헐뜯고 있다. 대중은 이러한 갈등에 지쳐 외면하고, 무비판적 대동단결론을 요청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실망감에 편승하여 최근 무당파나 무정견주의를 찬양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왜곡된 노선운동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선운동 자체를 폐기하자는 것은 결국에는 대중추수주의로 귀결되고 운동의 개량화를 촉진할 것이다.


  4) 현장성의 상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현장이 자본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의 현장 통제 전략은 아주 치밀하게 이루어져 왔다. 노동의 연대는 실패했지만 자본의 연대는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틀린 말이 아니다. 자본의 노동통제는 국가통제에 의존하던 수준을 벌써 예전에 뛰어넘었다. 이에 반해 노동운동 진영은 현장을 재장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으나 제대로 된 분석조차 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다. 새로운 활동가를 양성하지 못한 가운데 87년에 성장했던 세대가 여전히 운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과 청년의 조직화가 전세계 노조운동의 사활적인 과제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현장만 아니라 지역 현장도 주목해서 조직해야 할 공간이다. 지역은 시민운동의 활동공간으로 방치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당의 성장과 함께 지역이 주요한 조직화의 공간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주도할 수 있는 힘이 미약하다. 사회문화의 전반적인 변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 등의 조건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생활 현장에서의 운동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1) 이념과 전망의 확립


  반자본주의 운동의 기초는 노동운동이며, 노동계급의 사상과 중심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계급운동의 복원은 변화된 시대를 정확히 이해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를 철저히 분석하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의 전망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청사진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윤에만 매몰돼 인간과 환경을 황폐하게 하고 핍박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평등, 연대가 꽃피는 사회를 건설하려 한다. 역사의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라 불렸던 국가는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당 관료의 독재 속에서 노동자는 창조적 에너지를 잃어버렸다. 지령형 계획경제는 민중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한의 운동 속에서 이것은 과거 외국의 역사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오류로 판명난 국가사회주의 노선에 우리의 운동을 종속시키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실 사회주의의 비판을 넘어 청산주의적 입장이 운동 내에서 상당히 크게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릴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이념과 상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냐 아니냐를 선언만 하면 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 변혁적 주체의 형성, 이행의 정치전략 등등의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운동의 궁극 목표와 일상의 활동을 변증법적으로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당운동과 노조운동, 사회운동에 통일된 전망을 세워야 한다.  

  

  2) 계급적 노동운동의 복원


  노동운동은 계급적 주체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100년 전의 조건을 현재의 운동에 적용시킬 수 없다. 생산의 토대는 급격하게 변화하였으며, 노동자의 조건이 달라졌다. 자본의 수탈은 생산의 현장에서만 아니라 노동자의 삶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단절을 철폐할 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 노동자를 계급적 주체로 확실히 묶어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 현재의 자본주의에서 노동운동의 영역은 임금과 근로조건에 한정되지 않는다. 교육, 의료, 주택, 토지 등의 상품화와 시장화를 거부하는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개별 임금 외에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임금을 둘러싼 투쟁이 필요하다. 세상을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운동의 세계화를 구호가 아닌 현실로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계급적 노동운동의 복원을 위해서는 시급하게 산별노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관료화를 우려하면서 산별노조를 부정한다면 기업별 노조체계로 받아왔던 고통에 눈감는 것이며 동시에 노동자의 계급적 조직화의 중요한 발판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 노동자가 투쟁의 핵심부대로 성장할 수 있는 조직적 토대가 취약한 현실이기에 산별노조의 강화가 더욱 시급하다.


  3) 강고한 정치적 부대의 형성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의 결합은 대단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국가권력의 쟁취는 변혁운동의 필수적 과제 중 하나였지만, 민주노조운동의 구심 전노협은 이를 시기적으로 부적절 하다는 이유로 운동의 한 축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미루었다. 국회에 민주노동당이 진출한 지금에도 이러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노총에서 민주노동당 당원인 조합원은 3% 남짓하다. 노동운동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나라에서의 노동자 정당으로서는 예외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변혁운동에서 당의 위치는 지극히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도 민주노동당은 한국의 운동에서 고민의 중심지점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무기를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그러나 외국 좌파정당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범을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떤 이는 브라질 노동자당을, 누구는 스웨덴을, 또 다른 이는 이탈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전 노동운동의 경험에서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않는 원칙은 당의 계급적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과 의회주의로 경도되지 않는 것이다. 당이 제도정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대중운동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명확한 목표와 정확한 좌표설정을 통해서 민주노동당을 변혁운동의 중심체로 건설해야 한다. 당의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를 정치적 계급으로 형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경향을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 하나는 당의 계급 연합적 성격을 과도하게 부풀려 노동자 중심성을 훼손시키려는 경향이다. 특히 전략적 의미로서의 당을 외부에 두고, 당을 전선체로 격하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둘째 당의 이념을 이러저러한 잡탕으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현실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현실의 외양만을 강조하여 당을 자유주의 정당으로 전락시키려는 경향에 대한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 


  4) 새로운 저항적 사회운동 전선의 구축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전체 사회운동의 혁신이 시급하다. 여성운동은 일하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대중적 운동이 되어야 한다. 협업화와 생태농업 등 대안사회의 비전을 적극 추구하는 농민운동을 일궈야 한다. 자본주의 비판의 시각에서 근본대안을 제출하는 환경운동을 형성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저수지로서 진보적 학생운동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역량을 투여해야 한다.  좌파지식․문화역량과 대중운동의 결합을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모아 전쟁 없는 세계라는 평화운동을 확대시키고 미국을 비롯한 패권국의 패권전략에 맞서야 한다. 평화운동은 다시 평화적이고 진보적인 한반도의 통일 대안을 고민하는 대안적 통일운동과 접목되어야 한다.

  특히 통일운동에 있어서 나타나고 있는 왜곡된 편향과 관련하여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계급모순과 남한 민중의 삶의 현실에 충실하고자 했던 운동의 흐름이 통일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된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변혁운동에 있어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중국의 거대한 경제적 잠재력과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 전략은 중국과 미국의 직접적 대립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러시아와 일본까지 포함하여 대단히 복잡한 정세가 전개될 것이다. 또한 통일 문제 역시 남북한간의 문제로 축소해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통일 운동을 민족운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과학적이고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운동의 혁신이 사회 변혁의 과정 및 계기로서 하나의 전선으로 모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사회포럼 등 운동의 통일적 전개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긴 하나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하나의 이벤트에 그치고 있는 점은 역으로 운동역량의 결집을 위해 우리가 투입해야할 노력이 더욱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새로운 운동세력을 만들자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는 그간의 관성으로는 감당키 힘들 정도로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제를 던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나태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가 한 발 앞서 내딛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장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일을 시작하려면 먼저 그 주체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이에 따라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노동해방사상에 동의하는 활동적 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조직을 건설할 것을 제안한다.

  새로운 운동세력은 이제까지의 민주노총 내 분파, 당 내 분파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기존의 민주노총 내 분파는 비록 특정한 이념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총연맹, 연맹, 단위노조의 집행부 선거 경쟁이 주요 활동이 되어왔다. 당 내 분파는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기 이전의 이념과 인연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당직을 둘러싼 인사파벌의 성격을 강하게 띠어 왔다. 모두 다 기존의 운동을 개혁하기보다는 그 틀에 갇혀 무의식적으로 운동의 모순과 위기를 심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선거 경쟁이나 과거의 인연에 따라 이합집산 했던 기존의 활동과는 철저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세력을 형성하려 한다. 과거의 출신이나 배경은 새로운 조직의 건설에 일체의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당 강령이 표방하는 것처럼 국가사회주의 오류와 사민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의 이상과 원칙을 운동 속에서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 노동자 계급이 사회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일으켜 세우는 것, 민주노동당을 변혁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강화하는 것, 대중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운동가의 모범을 창출하는 것, 그리고 현장의 조직을 강화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지적․도덕적으로 우월한 정치계급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기에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조직은 이념 조직이자 실천 조직으로서, 공동의 학습, 공동의 토론, 공동의 실천, 공동의 평가를 핵심으로 하는 조직이다.

  우리는 검증되지 않은 것을 완제품이라 내놓고 함께 할 것을 요구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인 조직화의 방식은 하향식이었다. 당장의 조직을 만드는데 이러한 방식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벗어나 노동해방사상의 이상과 원칙을 지향하는 “경향적 동질성”을 전제로 참가 성원이 함께 이념과 노선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솔직히 이것은 우리 운동의 현실적 수준이기도 하지만, 전위주의 조직노선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식적인 활동가들이 과거의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각오로 함께 한다면 남한운동의 과학적이고 실천적 대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확신으로 우리는 조직을 시작한다. 동지들 함께 하자. 함께 미래를 만들자. 함께 세상을 바꾸자. 2004. 11. 6. (끝)

- Download #1 : 전국조직_주비위_제안서.hwp (28.5 KB), Download : 101  

Lexus  (2012-01-07 10: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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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nteceruq  (2012-01-08 01: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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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p  (2015-06-18 15: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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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a  (2015-12-11 13: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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